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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성 칼럼] 춘추필법과 춘추정신

기사승인 2018.04.27  09:5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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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신문지상에 글을 올리면서 춘추필법과 춘추정신을 생각해 보곤 한다. 제한된 지면의 글을 통해 일찍이 공자가 생각하였던 춘추필법과 그 정신을 얼마나 나타낼 수 있으며, 지면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춘추(春秋)’는 공자가 춘추시대 노(魯)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이 춘추(春秋)에 기록돼 있는 기간(B.C 770∼B.C 403)을 춘추시대(春秋時代)라 부른다. 맹자는 공자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태평한 세상이 쇠퇴하고 인의(仁義)의 도(道)가 쇠미해, 괴이한 학설과 난폭한 행위가 일어나니 신하가 군주를 시해(弑害)하는 경우도 있고,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경우도 있었다. 공자께서 이를 심히 우려해 춘추(春秋)라는 역사서를 저술하셨다. … 공자는 ‘나를 이해하는 것은 아마도 이 춘추 속에 있을 것이고 나를 질책하는 것도 아마 이 춘추 속에 있을 것이다’. 공자가 춘추(春秋)를 짓자 난신적자(亂臣賊子)들이 비로소 두려워했다. 《맹자(孟子) 승문공(騰文公)(下)》

춘추시대는 신하가 군주를 죽이고,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하극상의 시대였다. 이때 대의(大義)와 명분(名分)을 중시하여 난신적자(亂臣賊子)를 비판한 공자의 엄정한 판정의 필법 자세를 춘추필법(春秋筆法)이라 한다.

춘추필법은 역사적 사실을 단순히 중립적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사실 하나하나에 대해 단호한 평가를 내리는 자세다. 공자는 아무리 제후답지 않은 제후라 할지라도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죽이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는 행위로 봤다.

그는 하극상을 자행한 경우 도적과 다를 바 없다고 보고, 기록 대상을 가리지 않고 역사적 사실에 대해 자신의 글의 행간을 통해 추상같이 평가했다. 그는 잘한 일이 있으면 칭찬하고(褒), 못한 일이 있으면 추상같이 비판(貶)했다. 그의 이런 ‘춘추필법’은 후세 역사기록의 전형으로 받들어졌다.

춘추시대 제후들은 부국강병의 실현을 꿈꿨다. 이를 위해 이들은 기존 제도의 변혁인 변법(變法)을 추구했다. 변법은 이른바 개혁이고 혁신이라 할 수 있다. 주요 내용은 위민사상의 실천으로 국민의 생활 복지를 위한 각종 제도의 공평무사한 운용이다. 이의 주요 골자는 좋은 법의 시행이고 능력과 인품에 따른 인재 등용이다. 인재들을 합당한 자리에 배치해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고, 이들이 제 역할을 하도록 했다.

지위와 권력은 국민을 위해 봉사하라고 주어진 것이지 사적인 욕망을 충족하라고 준 것이 아니다. 선거를 통해 집권한 세력들이 서투른 지위와 권력으로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고 편향적 패거리가 돼 권력을 남용하라고 준 것은 더욱 아니다.

엄중한 대의명분의 필법으로 난신적자들을 두려워 떨게 한 2500여년 전의 공자도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춘추정신을 지키려했던 나의 쓴 소리들이 세상에 소금이 되고, 교육 현장에 희망과 빛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김유성 죽전고등학교 교장

국용진 기자 yside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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